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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사람과 사랑의 공유는 가능한가, <사랑의 시대>

by 리먼 2017. 2. 5.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랑하며 지내야 하는 '사랑의 시대'이지만,

사랑받을 수 없다면 사랑받을 수 있는 곳 '사랑의 시대'로 떠나야 한다.

비록 세상 어디에도 '사랑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공동체의 생활은 인간에게 보다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하는가?

집과 물건, 그리고 사랑도 공동소유할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할 수 있는가?


한글 제목 '사랑의 시대' 와 공동체를 뜻하는 원제 'The Commune, Kollektivet'를 함께 생각하며 보면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이 가족? 공동체? 또는 무리를 관찰할 수 있다.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지만, 그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은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되고 이러한 부분은 개개인이 다 다르기에 집단은 완벽한 일치와 공감, 의견통일이 일어날 수 없다. 


영화는 사람의 감정 중에 가장 근본적이고 격렬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이상적인 공동체를 감정적인 인간이 이룰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 헌트>로 집단내에서 인간이 본질적인 이기심을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는 <사랑의 시대>가 <더 헌트>보다 훨씬 좋았다. 아니 <사랑의 시대>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더 헌트>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시선으로 전개되기에 아직 아빠의 시선에, 아이를 가진 부모의 시선에, 성폭력의 취약함에 직접적인 공감을 하지 못하였지만 <사랑의 시대>는 보다 순수하게 사람의 소유욕과 감정, 그리고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기에 10여명의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100% 몰입하고 공감하였다.


-상속받은 저택-


줄거리 및 스포를 포함한 영화 리뷰>

영화는 사회주의가 새로운 미래로 떠오르던 1970년대,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매우 화목한, 아무 문제도 없이 지내던 에릭과 그의 가족(아내 안나, 딸 프레아)은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으로 대저택을 받게 된다.

교외에 떨어져 있는, 관리비도 엄청난 그 집을 팔기 전에 에릭과 그의 가족은 마지막으로 하룻 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안나가 말한다. 팔기보다는 이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니 이미 올레한테 연락했다고..


*올레는 후에 이 공동체의 리더, 족장을 자연스럽게 차지하는 인물로 아마 안나의 오랜 친구, 존경하는 선배 같은 관계로 생각된다. 안나의 대사 '올레와 함께 사는 게 나의 은밀한 꿈이였어'라는 대사처럼 안나는 올레의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존경하였고, 동경해왔던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선 가장 필요한 부분이 올레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공동체를 꿈꾸는 안나와 다르게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에릭(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듯. 대저택의 소유권자)은 반색을 표한다. 하지만 안나의 생각은 이미 굳혀졌고, 그 후의 이상적이고 흥미있는 미래를 위한 공동체 실험에 함껏 부풀어있다. 회피적인 성향을 지닌 남편 에릭의 불안함은 못본척 한 채.


그렇게 하나 둘 공동체를 이룰 인물들이 모인다(기존 공동체 인원들이 새로운 인원들을 인터뷰 하는 식으로. 영화내에서 탈락되는 사람은 다행히 없다?) 안나의 비슷한 사회주의를 꿈꾸는 한 부부와 심장병이 있는 7살 남자아이(전 9살까지 밖에 못살꺼에요. 라는 말로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박애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모나, 가진거 없는 이민자 알론.


그렇게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즐겁고 시끌벅적한 공동체 생활이 펼쳐진다. 안나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에 불만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에릭의 불안함을 제외하면.


*여기서 하나 더 갈등이 나오는데 바로 리더인 올레와 이민자 알론의 관계이다. 소유를 거부하며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체게바라가 되고 싶은 올레는 가난한 이민자 알론의 물건을 하나씩 불태운다. '필요없는 것은 제거한다. 그것이 룰' 이라며. 알론의 기타케이스, 부츠, LP가 왜 필요없는 것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으나, 지나고 보니,,가난하고 가진것 없는, 우리와 연결고리도 없는 이민자, 그리고 맘약한 울보인 알론이 맘에 안들었고, 그 집단중에 가장 약했기에 괴롭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숭이를 비롯한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들(인간을 포함해서)의 리더가 라이벌 또는 집단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가장 약자를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리더쉽을 강화하는 행동과 같은 방식을 보인다. 


불안함, 쉽게 말하면 기존 가족에서 느낄 수 없던 외로움을 느끼던 에릭앞에 어느날 한 여자, 엠마가 나타난다. 자신이 가르치던 젊고 아름다운 학생인 엠마의 모습에서 누구도 말하고 있진 않지만 안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외로운 에릭 앞에 첫사랑인 안나가 다시 나타난 듯이.


그렇게 둘의 불륜? 사랑은 이어가던 어느 날. 안나와 공동체 사람들이 다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에릭과 딸인 프레아만 제외하고.

친구네 집에서 집에 돌아온 프레아는 샤워 소리가 들리는 부모님의 침실에서 안나의 자리에 앉아있는 엠마를 마주하게 된다.


그 때 샤워를 마친 에릭이 나오고 프레아를 본 에릭은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 소리..그리고 정적.

프레아가 받은 수화기 너머에서는 엄마, 안나의 신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짧은 대화


"아빠는 집에 있니?"

"아니 없어"

"그래 스프링롤 사먹고 잘 있어. 사랑해~"


*아 이때 프레아의 전화통화할 때 표정.. 진짜. 눈빛 만으로 '그냥 없던일로 해요. 모른척 할께요. 지금 행복을 깨지 마요'가 느껴졌다.

사실 이 부분만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눈빛, 표정을 엄청 섬세하게 남아내서, 프레아, 안나, 에릭, 엠마의 감정들이 스르르 전해져 왔고, 그만큼 더 아팠고 나도 함께 혼란스러웠다. 그만큼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엠마가 가고 에릭은 프레아에게 변명하지 않겠다며, 안나에게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한다. 엠마를 사랑해왔고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사랑과 행복, 균형이 깨지지 않길 바라는 프레아.


그리고 이 때부터 프레아도 다른, 자신만의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 지금 받고 있는 사랑이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절대 잃지 않을 자신만의 사랑을 갖기 위해서.


에릭은 안나와의 평범한 잠자리에서 고백한다. 사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프레아도 알고 있다고.(굳이 집에 왔었다고, 이 침실에 왔었다고 까지 이야기 하는 솔직함) 안나는 화내거나 실망하는 기색이라기보다는 (애써) 차분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한다. 에릭은 이 상태로는 안되겠지. 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독립을 준비하겠다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찾아온 안나의 생일. 뉴스 앵커로 활약하는 안나에게 많은 스탭들의 축하가 쏟아지고 있다. 그 때 멀리 보이는 에릭가 프레아.

혹시 생일에 축하도 못 받고 있을까봐 와봤다며 이미 많은 축하를 받고 있으니 집에서 보자며 돌아가려는 에릭과 프레아에게 안나는 저 사람들의 축하보다 당신들과 함께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며 따로 나온다. (이 장면에서 공동체의 집단, 사회적인 교감을 우선하던 안나가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보였다. 비록 에릭을 잃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긴 하겠지만..)


카페에서 독립 계획을 말하는 에릭. 그런 에릭에게 안나는 그러지 말고..엠마도  일단 임시로 우리와 함께 지내자고 한다.

(엠마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자는 제안과는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이 말은 듣는 90%의 사람들은 다 함께 살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그렇게 어느 날, 평범한 회의 중 하나의 안건으로 올라온 엠마의 공동체 생활 합류.

여느 때 처럼 토론을 하며 찬반 다수결 투표를 통해 엠마의 합류는 부결된다.

(엠마는 기존 다른 멤버들이 합류할 떄 처럼 인터뷰를 하러 왔지만, 합류의 찬반보다 엠마의 인터뷰 진행에 대한 찬반이 먼저 진행되어야 할 것 같다는 전체의 의견에 따라 엠마는 정중히 퇴장한다. 자기가 있으면 이야기 나누는 데 방해가 될 것 같다며, 그리고 조금은 불편한 느낌으로) 


친구들은 안나가 힘들 수 있으니 함께 안하는게 좋겠다는 뜻을 보이며, 에릭이 선택(나가서 엠마랑 살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살든가)해야 할 문제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린다. 불안해하는 안나와 생각지 못한 결과에 혼란스러운 에릭을 뒤로하고 바로 이어지는 식기세척기 회의.


테이블에 남은 에릭과 불안한 표정의 안나. 에릭은 사람들을 다시 테이블로 불러 모은다. 조금씩 고양되며 격정적으로.

그리고는 다 필요없다고. 내 집에서 모두 사라지라고 소리지른다. 누가 누굴 나가라고 하냐며. 내가 대장이라며. 그리고 졸도.


곧 다시 정신을 차린 에릭과 그런 에릭을 부축하는 안나. 에릭은 힘빠진 소리로 다시 외친다. 여긴 내 집이야.


그렇게 엠마는 함께 살기 시작한다. 에릭과 함께. 잠자리를 하며.

그런 잠자리 소리에 안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린다. 그리곤 일어나 조용히 담배 한대를 핀다.

(이 부분에서 후에 다른 사람들은 잠자리 소리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안나에게 방문 앞에서 몰래 들었냐고 한다. 안나는 실제 귀로 들었을까? 가슴으로 들었을까?)


그렇게 엠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에릭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만큼 안나는 불안해지고 쇠약해져 간다.


그리고 결국 뉴스 생방송 큐 사인과 함께 안나는 작게 외친다.


'더이상 못하겠어'


결국 앵커자리에서 짤린 안나는 비틀거리며 배회한다. 당당하고 건강한 엠마와 대비되게.


어느 날 엠마가 프로젝트 마감으로 바쁜 에릭을 찾아간다. 처음 에릭과 사랑을 시작했던 그의 교수실로.

그리고 말한다. 안나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무너져간다고. 안나를 돌봐달라고. 보살피라고.


하지만 프로젝트로 바쁜 에릭을 엠마의 말에 오히려 성을 낸다.

지금 얼마나 바쁜데 내가 여자까지 신경써야 하냐며.


그리고 다시 평범한 저녁시간. 다 같이 모여 닭요리를 먹고 있다.

위태로운 움직임으로 식탁에 앉는 안나에게 친구가 묻는다. 괜찮냐고. 낮에 모하고 다니냐며. 걱정을 해준다.


그런 친구의 질문에, 안나는 무슨 소리냐고 일하고 다닌다며 아무 문제 없는 척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안나의 표정은 매우 위태롭다. 그리고 친구들, 엠마까지도 불안함에 테이블은 정적이다.

특히 엠마는 불안함 아니면 난처함, 또는 죄책감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다.


그리고 친구들, 공동체는 말한다. 안나 너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현재 상태는 너무 위험하다고. 안나 너를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너를 더 위험하게 하는 이 곳을 떠나야만 한다고.


그 말에 반발하는 안나. 그 때 딸인 프레아가 조용히 그리고 슬프게 말한다.

'엄마, 엄마는 떠나야 해. 그게 엄마를 위하는 길이야'


그리고 친구들은 테이블을 떠난다. 그리고 에릭, 안나, 프레아 셋 만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 공동체의 시작인 에릭의 가족이 와해되기 전 마지막 함께 있는 장면처럼.


그리고 곧 안나는..비척비척 일어나서는 식탁을 나선다. 그리고 뒤로 울먹이며 프레아가 부른다 '..엄마..'


그리고 그날 밤 엠마의 물건을 울부짖으며 불태우는 안나를 안고서 울며 말리는 프레아.


다음 날 아침 안나는 한결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게 체념의 안정인지 시작의 고요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공동체에게 말한다. 나가겠다고.


다시 안정을 찾은 공동체.

프레아가 연인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엄마 품에 안겨 그런 프레아를 보는 심장병에 걸린 7살 아이의 슬픈.. 또는 체념의 표정.

그리고 아이는 심장이 정지되어 죽는다.

마치 사랑을 잃어 살아갈 존재이유가 없는 것 처럼.


*여기서 '사랑의 시대'에 대한 말인 나온다. 아이는 사랑을 찾아 '사랑의 시대'로 떠나간 것 이라고.


*그리고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친구가 한다. 옛날에 실험을 하나 했는데 아이들을 2그룹으로 나누어서 환경(먹고,자고)은 같지만 한 그룹은 전혀 안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하였더니, 그 그룹은 모두 죽어버렸다고. 이는 사랑을 받지 않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는 전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프레아는 사랑받기 위해 부모와 공동체보다 자신만을 보아 줄 연인을 택하였으며, 안나는 사랑받지 못하여 미쳐갔으며, 7살 남자아이는 사랑을 잃어서 죽어버린 것이다.


아이의 장례식이 끝나고 안나는 떠나고, 남은 이들은 새출발을 위하여 그들이 회의를 나누던 식탁에서 다시 건배를 하며 영화는 끝난다.



정말 가슴이 산산조각으로 부셔지는 영화였다. 내용이 충격적이라고보다는 이렇게 각자의 감정에 몰입될 수 있도록 한 각본과 연출에 경이스러웠다.

물론 내용도 간단한 내용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동체과 과연 사랑을 받기 위해 살아가는, 소유를 기본 전제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라는 기본 전제를 바탕의 내용이기에 깊게 이해하며 봐야지 영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은 사랑에 종속되는 미련한 동물이야',  '공동체는 역시 인간이 이루기엔 불가능해' 라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마지막에 어떻게 보면 희생도 있었지만 남은 이들은 앞날을, 미래를 위해 살아가며 그 공동체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다만 감독은 앞으로도 그런 문제는 반복될 수 있다. 인간이니까. 그때는 어떻게 할래? 라는 의문을 던진 것 같다.

왜냐하면 감독도 그런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꿔봤지만, 현실적인 불가능을 보았기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1차원적으로 보면 에릭과 엠마의 불륜이고 그를 통한 가정 파탄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그리고 있지 않다. 특히 중간에 나오는 안나와 엠마가 벤치에서 나오는 대화 장면에서는 둘이 마치 자매로도 보인다.

그리고 에릭 역시 공동소유, 공동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미 마음이 떠난 안나에게 사랑을 줄 수 없었다.


난 사랑의 배분이 가능한지, 공동으로 사랑하는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평등한 관계로 이어지는게 불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국가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것이나 집단들이 리더(종교는 교주, 축구도 주장, 마을엔 이장)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였다.



-모나의 공동체 합류에 찬성-


-누구의 아픔도 함께, 사랑도 함께-


-함께 밥을 먹는 우리는 식구-


-친자매 같은 안나와 엠마-


-마치 한 가족같은 공동체-



사랑의 시대(Kollektivet , The Commune , 2016)

★★★★★ 꼭 다들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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