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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ight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by 리먼 2024. 9. 22.

전부터 왜 주의사람들은(가죡을 포함해서) 안정적인게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했었다. 안정적이기 위해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고 낯선곳을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이 왜 대중적인 의견인지 의아했었다. 하고싶은 것을 생각하기보다 예상되는 길 위에서 그 상위에 자리잡음으써 남들보다 높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정석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고 그 사람이 그래서 행복한가는 왜 관심이 없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어릴때부터 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안정적인 공무원를 하든 남들이 다 아는 대기업에 다녀야 된다고 하는지가 공감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과 행복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기에 자본적으로 불안요소가 적기에 그렇게 생각해왔고 또 남들이 사회가 그러니 그렇게 생각이 주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다 우연히 유퀴즈에서 행복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평소때 하던 생각이 명쾌히 정리되는 느낌이였다.

"겨울에 에어컨을 끈다고 따뜻해지지 않는다. 따뜻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난로다."

이처럼 불안을 제거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을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즐거움이든 즐거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사람, 타인이다. 그렇기에 외향성인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높다.

사람은 늑대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사람보다 훨씬 강한 짐승을 사냥하기도 하고 함께 힙을 합쳐 문명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외향적인 사람의 반댓말이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덜 외향적인 사람일 뿐이다.


다만 외향적인 사람은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다양한 행복을 느끼고 내향적인 사람은 내가 익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행복을 느낀다.

그렇기에 낙천적이고 자존간이 높고 다양한 관계를 잘 맺는 외향성이 강한 사람이 행복을 더 많이 자주 느끼게 된다.


내향적인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향적인 사람의 행복의 최대치는 외향적인 사람의 평균 행복감과 비슷할 수 있기에 외향적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성향이 완전히 바뀔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외향성 10인 사람이 외향성 30으로 변해갈 수는 있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여기서 외향적인게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다는 것과는 별개이다. 또한 낙천적이고 자극을 추구하기에 위험도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게 100년을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50년.. 아니 적당히 행복하게 80년을 살고 싶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는 피곤하다. 그렇기에 그것을 좋게 맞물렸을때 나오는 도파민과 행복지수는 더욱 큰 것이다. 마치 사랑처럼.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다. 는 사람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 또는 그것에 대한 기대만큼의 실망감이 컸기에 차선책으로 혼자를 선택한 것이지 그것이 내가 좋아하은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큼의 행복이 될 수 없다.


또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보다 좋게 살아갈 확률도 적다.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몸에 안좋은 음식을 2배 이상 먹고 몸에 좋지만 맛없는 것은 3배 이상 먹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거나 이타적인 행동을 할 확률도 적다.

그건 나같아도 그럴 것 같아.

나 혼자 살꺼야. 누구 눈치도 보지 않을꺼야.
사랑 안받아도 돼. 사랑 받으려 노력할 필요 없어.
내 편할대로만 살꺼야.

라고 생각하면 주의에 누가 쓰러져 있어도 신경이 덜 쓰일 것 같다. 타인에 관심이 0 이라면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을 테니까.

한국 중국 일본 등은 집단주의가 강한 유교권 국가이다. 그렇게 하나의 정답을 정해놓고 살아가기에 남들과의 계층화가 이루어지고 비교하게된다. 그렇기에 더욱 행복을 느낄 기회보다 불행을 느끼는 상황에 많아지게 된다. 또한 이것은 사회의 또는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유교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이 없기에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행복은 개인화에 따른 자유도에 종속된다.
다양한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을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 사회는 행복감을 느끼는 횟수와 절대량이 많을 것 이다. (이것과 반대가 절대적 기준에 따른 비교)

또한 이타적인 것에 기반한 사회를 신뢰할 수 있다면 안정감과 편안한 행복감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잘 되어 있는 곳들이 북유럽 국가들이며 그들은 행복을 위한 사고를 하고 행복을 위한 성장을 한다.

그것이 성장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한국사회와 많이 다른 점일 것 이다.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행복을 느끼며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대중적인 의견이니 맞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